
끝나지 않는 고난 속 피어난 강인함
나는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면서 딸에게 할머니 요양원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내 어머니 허정례 씨는 올해 101세를 맞이했다.
그녀는 6·25 전쟁의 비극 속에서 남편을 잃었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두 아들을 홀몸으로 키워냈다.
한밤중 인민군에게 끌려가던 남편의 뒷모습은 영원한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 어머니의 배 속에는 내 남동생이 자라고 있었다.
신혼살림을 꾸렸던 서울에서는 젊은 여자가 홀로 살기 막막했다.
어머니는 짐을 싸 고향인 충북 괴산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동생을 낳았다.
나는 당시 다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보따리를 이고 장터를 헤매었다.
행상과 보따리상 등 어떤 일도 마다치 않았다.
이웃 사람들은 어머니를 두고 남의 등에 업혀 사는 법이 없는 강인한 여자라고 입을 모았다.
행복의 문턱에서 찾아온 위기
장성한 아들들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셋방살이 14번을 전전한 끝에 서울 강동구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행은 끝났고 행복이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어머니에게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2019년 노인대학 4년제 졸업장을 받아올 정도로 정정했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어제 일도 깜빡깜빡 잊어버리곤 했다.
때로는 한밤중에 깨어나 거실을 배회했다.
꼭두새벽부터 밥을 해주겠다며 부엌칼을 쥐고 가스 불까지 켰다.
다리 근육이 점차 빠지면서 보행기가 없으면 거동조차 힘들어졌다.
아내와 나는 365일 24시간 내내 긴장 상태로 지냈다.
지쳐가는 아들의 깊은 고민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곧 여든 살이었다.
늙어가는 내가 더 늙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고달팠다.
이제는 정말 쉬고 싶었다.
매일 데이케어센터를 오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마중했다.
삼시 세끼 식사를 챙겨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에 지쳐버렸다.
요양원 입소 신청서를 세 번이나 썼다.
하지만 세 번 모두 결국 찢어버렸다.
요양원 앞에서 무너진 아들의 마음
어머니는 아들 곁에서 올해 101세가 되었다.
놀랍게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깜빡깜빡하던 섬망 증세도 한결 누그러졌다.
요양원 입소를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집 근처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복희야, 너 점심은 먹었냐?”
당신도 성치 않으면서 아들 걱정만 하는 어머니를 보니 괜히 신경질이 났다.
평생 자신밖에 모르는 엄니에 대한 애틋함과 그를 떠나보내려 했던 죄책감이 뒤섞였다.
“아 제발, 제발 엄니, 엄니 걱정만 하시라고요!”
울부짖었던 그날, 아들은 요양원 입소서를 다시 찢었다.
차마 어머니를 보낼 수가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옛날 고려장처럼 바로 돌아가실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찌 자식보다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해줘도 나보다 나을까 싶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나를 키우느라 힘들었으니 이젠 내 차례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달력 뒷면에 숨겨진 사랑의 기적
하지만 그 역시 79세의 노인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의 어머니를 보살피며 아들의 체력도, 마음도 고갈되었다.
이 나이 되면 안 아픈 데가 없다고 그는 토로했다.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에 부쳤다.
노인네가 노인네를 부양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의 섬망 증세가 옅어지고 기력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비밀은 바로 달력 뒷면에 있었다.
80세 아들이 달력 뒷면에 적어 놓은 무언가가 101세 노모의 섬망 증세를 없앨 수 있었다.
그것은 가족의 깊은 사랑과 끊임없는 관심이 담긴 따뜻한 기록이었다.
결론: 사랑과 돌봄의 힘, 그리고 고령화 사회의 숙제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사연을 넘어선다.
이는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서 마주하는 돌봄의 현실과 그 속에서 빛나는 가족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자식 된 도리와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의 고뇌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결국 요양원 대신 가족의 품을 선택하며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이 노년기 삶의 질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물질적 지원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가 얼마나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인 부양이 개인에게만 지워지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라는 숙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