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신분증을 향한 뜨거운 열망
남들이 알지 못하는 백화점 최상위 고객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과 독점적인 경험으로 가득했다. 연간 수억 원을 지출해도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신분증’은 단순히 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가치를 지녔다. 이는 한정판 명품을 먼저 안내받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부터 럭셔리 투어 미쉐린 스타 셰프 디너 등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독점적인 경험을 누리는 통로가 되었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백화점 실적을 구매하거나 명품 가방을 대신 구입해주는 글이 흔하게 게시되었다. 명품을 본인의 카드로 결제하여 백화점 실적을 채우고, 이를 희망자에게 결제액의 2에서 6퍼센트의 수수료를 얹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연말이 임박해서는 이 수수료율이 10퍼센트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처럼 백화점 최상위 등급 고객 즉 VVIP가 되기 위한 일종의 ‘실적 품앗이’가 성행했다. 고가의 명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자산가들이 이 같은 번거로움과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백화점 VVIP가 되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백화점 VVIP 등급 자체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증명하는 ‘우아한 신분증’이자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구매액을 넘어선 특별한 성취
백화점업계는 이러한 자산가들의 성취 욕구를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VVIP 제도를 설계했다고 전했다. 한 백화점은 연간 1억 2천만 원 이상 구매해야 획득 가능한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 위에, 매출 최상위 999명에게만 특별히 부여하는 ‘트리니티’ 등급을 따로 두어 차별화를 꾀했다. 또 다른 백화점 역시 ‘에비뉴엘 에메랄드’ 등급(연 1억 2천만 원 이상) 외에 매출 최상위 777명만을 엄선하여 ‘에비뉴엘 블랙’ 등급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난 해까지 최상위 등급이 없었던 백화점도 올해 기존 최고 등급인 ‘자스민 블랙'(연 1억 5천만 원 이상) 위에 ‘자스민 시그니처’라는 최상위 등급을 신설하며 VVIP 모시기에 동참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것을 넘어, 최고 수준의 소비력을 입증하는 소수만의 명예로운 지표로 작용했다.
일상 속 달라지는 품격 VVIP의 특권
백화점 VVIP들은 한목소리로 VVIP가 되는 순간 백화점 안팎에서 받는 대우가 현저히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한 VVIP 고객은 트리니티 회원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한 지인과 함께 백화점을 방문하여 트리니티 라운지에 데리고 가면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주말이면 백화점 주차장은 밀려드는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입장을 위해 한 시간 이상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VVIP 고객들은 이러한 번거로움 없이 전용 구역으로 곧바로 들어가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고 신속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백화점 내에 특별히 마련된 최고급 라운지에서 안락한 소파에 앉아 고급 음료와 다과를 여유롭게 즐기는 것도 VVIP만의 특권으로 제공되었다. 일부 백화점은 본점과 강남점 등 주요 지점에서 VVIP만 출입할 수 있는 ‘트리니티 라운지’를 운영 중이며, 다른 백화점도 자스민 시그니처 전용 라운지를 하반기에 개설할 계획을 밝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 VVIP만이 누리는 희소성
VVIP들에게는 단순히 돈만으로는 누리기 어려운 프라이빗 이벤트가 다채롭게 제공되었다. 한 백화점은 매년 VVIP 고객들을 최고급 골프장인 ‘트리니티 클럽’에 초청하여 특별한 골프 대회를 개최했다. 또 다른 백화점은 VVIP 등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울릉도 럭셔리 리조트 숙박권과 고급 자동차 드라이빙 체험 기회를 제공하며 만족도를 높였다. 일부 백화점은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 해외 제휴 백화점에서 라운지 이용 할인 퍼스널 쇼퍼 등의 해외 혜택까지 제공하여 글로벌한 경험을 선사했다. 미쉐린 스타 셰프를 초청한 프라이빗 갈라 디너, 명품 브랜드의 비공개 패션쇼인 트렁크쇼, 그리고 고급 문화 공연 및 전시회 초청 등은 VVIP만이 누릴 수 있는 독점적인 특권으로 제공되며 이들의 특별함을 더욱 강조했다.
새로운 명품을 가장 먼저 만나는 순간
쇼핑 시에도 VVIP 고객들은 일반 VIP 고객과는 차원이 다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대중에게 아직 공개되지 않은 명품 신상품과 한정판 정보를 가장 먼저 안내받았고, 전문 퍼스널 쇼퍼를 통해 별도의 안락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구매가 가능했다. 한 백화점은 트리니티 고객에게 샤넬과 루이비통 같은 인기 명품 매장에 대기 없이 우선 입장할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쇼핑의 편의성과 만족감을 극대화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경험 그 자체로 다가왔다.
백화점의 생존 전략 큰 손 고객 유치에 총력
백화점들은 막강한 구매력을 지닌 ‘큰손’ VVIP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들 VVIP 고객의 매출 기여도가 해마다 더욱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백화점의 경우 2023년 44.1퍼센트이던 VVIP 매출 비중이 작년에는 47퍼센트까지 높아졌다. 다른 주요 백화점들도 같은 기간 각각 41퍼센트에서 46퍼센트로 상승하는 등 VVIP 고객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소수의 VVIP 고객들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핵심적인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위한 차별화된 전략은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 되었다.
백화점 VVIP 제도는 단순한 고객 등급을 넘어섰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부와 지위를 증명하는 강력한 상징이자,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대우를 제공하며 사회적 구분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쟁점을 지녔다. 이러한 시스템은 소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교묘하게 자극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넘어선 ‘계층 충성도’를 형성하는 교훈을 던져주었다.